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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상식 및 사회문제

건빵의 기원과 근대 아시아 전쟁 알아보기

by 이슈 분석 2023. 3. 11.

50대 이상 남자들에게 건빵은 군에서 먹었던 추억의 간식으로 배고픔을 달래줬던 음식일 것이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과거 부모님 세대들이 먹었던 음식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건빵 제품 출시로 낯설지 않은데요 건빵의 기원과 근대 아시아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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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글

건빵의 정체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한테 익숙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특이한 점이 한 두 가기자 아닌 것이 건빵인데요, 건빵은 과자인지 빵인지 정체성부터 남다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빵을 과자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빵입니다. 건빵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전쟁 때 군인 아저씨들이 먹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건빵을 처음 개발한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건빵은 또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 중국 및 대만, 북한군까지도 군용 식량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건빵의 정체와 유래 등 건빵의 모든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2. 건빵의 정체

건빵의 원조는 무엇일까요? 원조는 비스킷이라고 합니다. 서양 비스킷이 일본에 전해진 후 변해서 지금의 건빵이 됐다고 합니다. 건빵에는 세상 풍파와 동서양의 전쟁 역사가 모두 담겨있는 매우 흥미로운 식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빵의 조상은 비스킷이며 비스킷은 과자라고 생각하지만, 비스킷도 원래는 두 번 구운 빵이었습니다. 이름도 라틴어로 두 번이라는 뜻의 비스(Bis)와 요리한다는 콕투스(Coctus)에서 비롯됐습니다.

빵을 두 번 구우면 어떻게 될까요? 수분이 날아가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비스킷은 군용이나 장거리 여행용, 혹은 항해용 식량으로 쓰이곤 했습니다. 반면 두 번 구울 때 빵이 타버리기 때문에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비스킷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널리 퍼진 것은 대항해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6세기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3. 동양에 전해진 비스킷

동양에 비스킷이 처음 전해진 것도 16세기 전반입니다. 1534년 일본에 표류한 포르투갈 상선을 통해 호밀 비스킷이 전해졌는데 낯선 음식을 본 일본인들이 쌀밥이 아닌 딱딱한 마른 빵을 식사로 먹는 사람을 보고는 무척이나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네덜란드 상선을 통해 연이어 비스킷이 일본에 전해지기는 했지만, 널리 퍼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1840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서양의 마른 빵, 비스킷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의 강대국이었던 청나라가 영국 함대에 무참하게 무릎 꿇는 것을 보고 일본도 긴장을 했습니다. 혹시 서양 함대가 일본으로 쳐들어 올 것에 대비해 한편으로는 서양식 대포 개발에 착수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이하게도 서양식 전투식량인 비스킷 개발에 눈을 돌렸습니다.

불을 피워 만드는 전통적인 동양의 전투식량인 주먹밥을 먹고는 근대화된 서양 군대와 지속적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4. 빛을 발한 건면포

한 세대가 지난 후 비스킷을 개량해 만든 마른 빵이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1877년 쇼균을 저지하는 수구파 사무라이 군대와 일왕을 지지하는 개혁파 관군이 맞서 싸운 세이난 전쟁 때였습니다.

이때 쇼군과는 전투식량으로 전통적인 주먹밥을 준비했고 일왕파는 서양식 마른 빵, 건면포를 준비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질 무렵,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무려 17일 동안 비가 쏟아져 내렸는데 이로 인해 쇼군 파는 밥을 지을 수도 없었고 간신히 만든 주먹밥도 쉬거나 비에 젖어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보름 동안 굶주린 쇼군과 사무라이 군대는 마른 빵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관군에 패했습니다.

 

5. 병참 측면에서 우세한 건면포

세이난 전쟁의 승패를 가른 요인은 여럿이 있지만 병참 측면에서는 주먹밥을 대체한 전투식량, 건면포를 꼽습니다. 이후 마른 빵, 건면포의 유용성과 중요성을 경험한 일본은 한반도 주변을 중심으로 진행된 1895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겼으면서 마른 빵, 건면포를 더욱 개량했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근대 이후 처음 일제가 일본 영토밖에서 치른 전쟁입니다. 원정 전쟁이었던 만큼 식량 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지에 조사단을 파견해 전투식량 연구에 주력했습니다. 그 결과 비스킷처럼 두 번 구워 수분을 완전히 제거한 군용 빵을 만들었습니다.

이름도 마른 빵, 건면포에서 두 번 구운 빵이라는 뜻의 중소면포로 바꿨습니다. 또한 일제는 이후 제 1차 세계대전과 1937년의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군용 빵, 중소면포를 거듭 개량했습니다.

보존성을 높여 야전에서 최소 6년 이상 보관할 수 있고, 수첩만 했던 크기도 지금의 한입 크기로 줄여 휴대성을 높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알록달록한 색의 설탕 결정체인 별사탕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당분을 보충하는 한 편 물이 없어도 침샘을 자극해 쉽게 삼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별사탕의 추가는 식민지였던 타이완과 오키나와에서 대량의 사탕수수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일제는 이렇게 개량한 군용 빵의 이름을 마른 빵이라는 뜻의 간빵으로 고치고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전시물자로 일반인들에게도 보급했습니다.

미군의 상륙에 대비해 밥 대신 먹을 양식으로 삼았던 것인데, 곳곳에 대량의 건빵을 비축해 놓았습니다. 종전 직전 경기도에는 건빵 1,600 가마를 저장해 놓았었다고 합니다.

일제의 건빵 개발은 서양 외세의 침략에 대비한 군용 식량 개선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100년에 걸쳐 침략 전쟁의 도구로 쓰이면서 완성됐습니다.

 

6. 맺음말

우리 건빵은 일제가 남겨두고 간 건빵에서 시작됐습니다. 일제 강점 때 한반도에서 건빵을 생산했지만, 기술자는 모두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물러난 후 한국전쟁 무렵까지 우리는 건빵 하나도 제대로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건빵은 두 번 구워야 수분이 제거되는데 자칫 잘못해 태우기 일쑤였습니다. 이랬던 우리가 실패를 딛고 건빵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무심코 먹는 건빵이고 심심풀이 과자로만 알았던 건빵이지만 이 작은 건빵 조각 하나에도 전쟁에서 싸워 이기려는 긴 세월의 노력이 압축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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