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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및 분쟁

중국 패권주의의 희생양 티베트의 독립운동

by 이슈 분석 2023.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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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언어와 문화, 종교가 있고 인도에 망명정부를 설립하여 반세기 넘게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티베트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6.25 전쟁으로 국제사회가 혼란한 틈을 이용한 중국의 패권주의 희생양이 되었던 티베트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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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지정학적 특징

티베트 자치구는 중국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국토면적은 122만 평방킬로미터로 남한의 12배 정도 크기이며 중국 전체 면적의 1/8 정도 크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히말라야 산맥이 위치하고 있고 인도와 네팔, 부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중국 입장에서 외부세력과의 완충역할을 하는 지역이고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티베트 지도
티베트 지도

티베트 자치구는 중국의 자치구로 수도는 라싸시입니다. 인구는 전체적으로 300만여 명 밖에 되지 않으며 중국이 통제하고 있는 5개의 자치구 중에서 해당 민족이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곳으로 80% 이상 티베트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한족들을 티베트로 이주시켜 신장위구르 자치구처럼 한족의 비율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있어 한족의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치구 인구밀도로 보면 몽골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 자치구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함께 중국 내 자치구 중 독립열기가 가장 강한 곳으로 중국정부에서 자국민을 포함하여 외국인의 출입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외부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과거부터 티베트에 대한 교통인프라 구축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티베트 방문 시 중국 관광용 비자 외에도 티베트 입경허가서가 필요하고 라싸나 르카쩌 등 개방지역 밖으로 가기 위해서는 추가로 중국 공안부에서 발급하는 여행허가서를 별도로 받아야 하는 등 불편하며 사실상 개별 관광은 금지되어 있는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최근에는 칭짱철도가 개통되었고 쓰촨 성 청두에서 티베트자치구 라싸시까지 촨짱철도를 건설 중이이어서 교통편은 많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러 인권 단체들은 중국이 디베트의 독특한 문화, 종교, 정치적 자율성을 억압하고 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인도에 설립된 티베트 망명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티베트는 정치적 , 문화적 , 종교적, 전략적으로 다양한 지정학적 특징을 갖고 있고 이러한 특징은 중국과 이웃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으며 지역안정과 국제 인권문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의 역사와 독립운동

티베트의 조상은 토번으로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하는가 하면 이슬람제국과도 전투를 하는 등 엄청난 전투민족이었습니다. 심지어 당나라와 네팔의 공주가 토번왕가로 시집을 오고 티베트문자가 만들어지는 등 문화적으로도 융성한 제국이었습니다. 

토번제국은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지만 인도의 불교와는 다른 형태로 변화되었고 특히 토번제국이 분열되고 11세기에 이르러 티베트 불교는 각 지방에 근거지를 둔 여러 종파들로 나누어져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각 지방의 지배층과 승려들이 결탁하면서 승려와 사원의 권한이 광범위하게 확장되기도 했으며 이렇게 큰 권세를 지닌 고승을 '라마'라고 불렀고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라고도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며 정식 명칭은 티베트 불교입니다.

12세기에는 몽골이 남송을 공격하다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남송을 포기하고 티베트를 공격하는데 티베트의 샤캬파가 몽골에 협력하여 티베트 전체를 장악하면서 통일되었고 신과 정치는 일치한다는 신정일치 종교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이후 티베트의 정치는 전통적으로 종교와 일체화되어 갔고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 대칸의 스승이 되고, 대칸은 티베트의 보호자가 되면서 몽골인들과 티베트인들 간에 종교적, 군사적 윈윈관계가 구축되었는데 이것을 '최왼관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원나라가 명나라에게 멸망하고 티베트를 버리고 도망치면서 보호자가 없어진 티베트는 카규파가 주도권을 쥐게 되며 티베트 고원에서 다시 분열과 통일을 반복하는 혼란기가 시작됐습니다.

혼란기를 잠재우고자 등장한 게 바로 '겔룩파'였는데 13세기 기존 종파들의 폐단을 비판하며 나타난 신흥 종파로 엄격한 계율과 불경 공부를 중시하는 일종의 종교개혁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겔룩파는 까규파와 대립하면서 빠르게 성장을 했고 몽골 초원으로 돌아갔던 몽골이 겔룩파를 받아들여 개종하면서 다시 원나라 때처럼 '스승과 제자'의 관계, 즉 '최왼관계'를 맺었으며 몽골의 힘을 등에 업고 신정일치 통일국가를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겔룩파의 수장이자 티베트의 지배자 역할을 맡게 된 최고 존엄의 명칭이 '달라이 라마'라고 불렀고 종교적인 권력만을 가진 2인자로 달라이 라마를 견제하는 '판첸 라마'라고 했습니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라는 의미이며 달라이 라마는 큰 바다와 같은 스승이라는 의미가 있고 판첸은 산스크리트어로 '대학자'를 뜻하는 '판디타'에서 따와서 달라이 라마를 가르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겔룩파는 또한 까규파의 교리 중 일부를 수용하여 환생승계제도라는 걸 도입했는데 지체 높은 고승이 죽은 뒤 어린아이로 환생한다는 교리로 달라이 라마와 판첸라마가 죽으면 서로의 환생자를 찾아내는 역할이 있습니다.

선대 라마가 죽으면 남아있는 라마가 승려들을 파견해서 환생자 수색을 하고 여러 후보를 추려낸 뒤 선대 라마의 유품을 알아보는지 등의 심사를 거쳐 선발을 하고 환생자로 판단된 아이는 즉시 달라이 라마나 판첸 라마로 즉위한다고 합니다.

현재 달라이 라마는 14대로 5살 때 달라이 라마가 돼서 80년 넘게 재임하고 있습니다. 

 

17세기에는 만주족의 청나라가 몽골을 물리치고 청나라를 세웠으며 강희제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청나라 군대를 주둔하면서 몽골인이 아닌 만주족이 티베트의 보호자가 되는 새로운 최왼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청나라는 몽골과 달리 '암반'이라고 불리는 중앙총독을 파견하여 내정을 간섭했고 달라이 라마의 환생 제도에도 개입했습니다. 

19세기가 되면서 인도를 점령한 영국이 등장했고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청을 견제하는 데 있어 티베트가 탐이 났던 영국은 1888년 티베트를 공격했고 1904년 수도 라싸가 함락하는 동안 청나라는 티베트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티베트는 독단적으로 영국과 조약을 맺어 티베트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명목상의 종주권만 인정하는 선에서 협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물러난 후 청나라는 군대를 파견하지만 티베트의 국민들은 어려울 때 외면했던 청나라에 대해서 최왼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었고 13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하여 티베트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영국은 조약을 근거로 청나라의 티베트에 대한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청을 압박했습니다. 

1911년 신해혁명이 발생하면서 청나라는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세워졌으며 각지에서 군벌들이 일어났고 1912년 13대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로 돌아와서 티베트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1914년 영국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중화민국 와 티베트, 영국 간 '심라조약'이 체결되며 3자간 국경선인 일명 '맥마흔 라인'이 그어졌습니다. 티베트는 자체적인 내각과 군대를 만들어 독립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국가기반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중화민국은 티베트 영토를 조금씩 뺏기 시작했으며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가 사망한 뒤 중화민국의 내정간섭 기관인 '몽장위원회'를 설치하였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이 연이어 터졌고 중국 내 공산당 세력이 확장되면서 중국 내 혼란이 가중되었고 중국이 티베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짐에 따라 티베트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국공내전이 발생했고 중화민국이 패배하면서 대만으로 도망쳤으며 영국도 인도 식민지를 포기한 뒤 인도양에서 발을 빼는 등 국제사회가 급격한 변화가 있었고 티베트는 독립이 되는가 싶었는데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 세계가 한반도에서 발생한 6.25 전쟁에 집중하고 있을 때 모택동은 4만 명의 정규군으로 티베트를 침공했고 티베트는 1만 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1년도 안 돼서 수도 라싸를 빼앗겼습니다.

이때 티베트는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고 국제사회도 티베트 문제에 관심이 없었으며 결국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는 중공과의 협상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티베트의 자치권이라도 최대한 보장받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며 1951년 북경에서 17개 조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공은 티베트 자치위원회 주요 직책을 공산당의 충실한 지지자들로 채웠고 티베트 불교를 중국 불교의 하부조직으로 편입시키는 등 본색을 드러냈으며 1959년 결국 중국 공산당 통치에 반발하는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났는데 중공은 군대를 동원해서 이 시위를 무참히 진압했습니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건너가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수립했고 티베트에 남았던 판첸라마는 1964년 북경으로 압송돼 가택연금되었으며 중공 내 문화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불교사원과 문화재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와 판첸라마가 모두 부재인 상태에서도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았고 판첸라마가 사망한 후 1995년 티베트의 고위 승려들이 '게둔 최키나마'라는 한 소년을 찾아냈고 인도에 있던 달라이 라마가 이 소년을 11대 판첸라마로 전 세계에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중공 정부는 판첸라마로 임명되지 3일 만에 '게둔 최키나마'와 그 가족들을 납치해서 폐위시켰고 '기알 노르부'라는 소년을 판첸라마로 임명하고 지금까지 그가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의 부모님은 공산당원으로 티베트를 지배하기 위해 가짜 판첸라마를 임명한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공산당에 적극 협조하며 달라이 라마를 비난하고 있는데 문제는 현재 80을 넘긴 고령의 달라이 라마가 죽을 경우 현재의 판첸라마가 차기 달라이 라마를 임명할 텐데 중국정부와 협의해서 가짜 달라이 라마를 세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세계인들의 관심과 도움 없이는 이들이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독립국가로 자리 잡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중국이 티베트를 포기 못하는 5가지 이유

8천 미터 이상의 봉우리만 5곳이 넘고 7천 미터 이상은 70여 곳이 될 정도로 지역 전체가 고산지대로 숨쉬기조차 힘들고 척박한 이곳을 중국의 모택동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한 지 1년 만에 서둘러서 점령했는데요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중국이 오늘날까지 국제사회의 온갖 비난에도 티베트를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5가지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가. 군사전략적 가치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는 데 있어 가장 잠재적인 경쟁국은 인도이며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티베트가 독립을 할 경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친인도 국가가 될 것이며 그럴 경우 티베트 지역이 중국을 위협하는 지역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모택동은 티베트가 인도와의 완충지라는 것에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임시정부가 인도에 있는 것을 봐도 중국 입장에서 티베트의 독립은 친 인도국가가 수립되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티베트가 친인도 국가가 되고 서방권의 도움으로 경제발전을 하면서 일정기간 국가 방위를 위해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고 미국의 군사기지가 들어설 경우 중국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보상의 이유 때문이라도 티베트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지정학적 가치

중국은 청나라 때 만들어진 땅과 경계선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하나의 중국' 정책도 청나라 때 만들어진 현재의 지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동북지역과 내몽골지역은 북에서 내려오는 러시아와의 완충지이며 러시아와의 충돌 시 러시아가 중국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시베리아와 몽골의 사막지대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천연적인 자연장애물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지역은 서쪽의 이슬람세력과 직접적인 충돌 위험을 줄여줄 거대한 완충지대입니다. 서쪽에서 중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텐산산맥, 파미르 고원 등 엄청난 높이의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장비를 대동한 지상군의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 자치구는 파키스탄에서 미얀마까지 길게 이어진 히말라야 산맥이 위치하고 있고 이 또한 지상군의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중국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티베트를 갖지 못하면 히말라야가 중국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 영토적인 가치

티베트 자치구는 전체 중국면적의 1/8에 해당할 만큼 크며 과거 티베트를 점령하고 일부를 떼어내어 칭하이 성, 쓰촨 성, 윈난 성 등에 붙인 것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크기의 영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가 독립을 하게 되면 일부 떼어냈던 지역까지 모두 티베트가 될 텐데 그럴 경우 이 면적은 중국 전체 면적에 1/4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국 입장에서 절대로 티베트를 독립시킬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중국은 이미 칭하이 성, 쓰촨 성, 윈난 성 등에 많은 투자를 했고 많은 한족들을 이주시켜 상권을 통제하고 있으며 중국화 하는 데 성공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갑자기 티베트가 독립을 하고 이곳을 통제한다면 중국의 입장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라. 도미노식 독립요구 시 공산당 정권 존립 위협

1991년 유고슬라비아와 소련의 해체 과정을 보면서 자치구들의 독립 위험성을 잘 알고 있고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신장위구르 자치구나 티베트를 독립시켜 주면 나머지 내몽골 자치구를 포함하여 5개 자치구들도 독립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무엇보다 50여 개의 소수민족으로 도미노식 확산이 될 경우 정권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신장위구르 자치구나 티베트 자치구가 역사적, 민족적, 종교적으로 중국과 동화되기 가장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들의 독립은 정권의 붕괴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기에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중국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 수자원 문제

티베트는 아시아의 식수 공급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강들의 수원지가 티베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황하강과 장강이 티베트에서 시작되며 티베트가 독립하면 이 강의 통제권을 잃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티베트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동남아시아의 젖줄이라고 하는 메콩강, 인도의 갠지스강, 파키스탄의 인더스강도 티베트가 발원지이며 티베트에서 발원한 강 유역에서 사는 사람들만 20억 명이라고 할 정도로 티베트의 수자원은 상당히 많은 국가들의 수자원 안보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중국은 50개가 넘는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 있고 5개 자치구는 역사적으로나 민족적, 언어 및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오늘 당장 독립을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5개의 자치구 중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는 역사적으로 독립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신장위구르는 미국에 티베트는 인도에 망명정부를 수립해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만주족이 건립한 청나라가 지배했던 영토가 본인들의 정통성을 잇는 국토라고 주장하면서 하나의 중국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5개 자치구 관점에서 보면 약탈한 것이고 침략한 것이며 청나라 이후 계속해서 그 영토가 유지되었던 것도 아닌데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의 독립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할 경우 중국정부와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티베트의 독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UN을 비롯하여 EU 등의 서방권 국가에서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인권 문제를 비난하지만 이들의 독립은 금기어처럼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 이들의 독립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티베트 독립을 지지한다면 다수국가들이 앉고 있는 소수민족 독립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스페인의 경우 바르셀로나에 있는 카탈루냐는 강력하게 독립 요구를 했고 프랑스의 바스크 지역 또한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등 유럽지역에는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독일의 바이에른,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역도 분리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곳곳에서 독립 요구가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북미의 캐나다도 퀘벡주는 분리독립운동이 있었고 현재까지 진행형이며 미국은 동맹국들 사정이 이런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티베트 독립을 지지할 수 없는 것도 있을뿐더러 미국도 텍사스주나 버몬트주도 독립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분리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줄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티베트의 분리독립을 지지해 줄 수 있는 국가가 없기 때문에 자력으로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패권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던 티베트의 독립과 독립된 정부 수립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국제사회는 인권문제라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아야 하며 특정국가와 소수의 권력자들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백만 명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지켜만 봐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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