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산 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품은 불모의 땅에서 동서문명을 이어온 실크로드의 역사를 간직한 지역으로 중국어가 통하지 않는 중국으로 잘 알려진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지정학적 특징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파키스탄 등 다수의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국토면적이 166만 평방 킬로미터로 남한 전체면적의 16배이며 중국 전체 국토의 1/6이라고 합니다.
인구는 약 2,500여만 명이고 순수 위구르족이 46%인 1,200여만 명, 훈족이 41%인 1천여만 명이며 기타 카자흐족 등을 포함하여 다수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형은 산맥과 분지, 사막,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 중앙에 세계에서 2번째로 넓은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는 타림분지가 있어 지역이 전체적으로 척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텐산산맥은 길이가 2,000KM에 달하며 너비가 400KM이고 최고 높은 봉우리가 7,439M이며 텐산산맥 남쪽으로 이어지는 텐산 남로와 우루무치를 지나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텐산 북로,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을 지나는 서역남로 등 3개의 실크로드가 있는 지역이기 합니다.
위구르족은 외모뿐만 아니라 종교, 언어, 문화까지 중국과 완전히 다르고 튀르크계 위구르족으로 아랍문자에서 유래한 위구르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무슬림입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할랄음식을 먹으며 중국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동투르키스탄과 서투르키스탄으로 분류하는데 모두 같은 투르크계 민족이며 동 투르키스탄이 지금의 신장 위구르지역입니다. 서투르키스탄은 소련연방이었다가 소련붕괴로 독립한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스탄이라는 이름이 붙는 국가들입니다.
신장 위구르의 역사
가. 위구르 제국의 탄생
흉노족의 후손은 돌궐족과 위구르, 투르크족 등으로 분류할 수 있고 돌궐족의 후속이 현재의 튀르키예 민족이었다고 생각하면 되며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스탄 국가들과 위구르족은 뿌리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6세기와 8세기 사이에 몽골 제국 이전 최대의 유목제국인 돌궐제국은 고구려와 연합해서 당나라를 괴롭혔는데 당나라가 힘이 강해지면서 돌궐과 고구려가 당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이때 많은 돌궐족들이 서쪽으로 도망을 갔고 이들이 만든 국가가 스탄 5형제인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아제르바이잔, 터키였습니다.
그런데 일부 돌궐족은 도망가지 않고 현재의 몽골 지역일대에 위구르칸국으로 남게 되는데 위구르칸국은 압바스 칼리파국의 이슬람제국과 함께 연합해서 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 일대에서 751년 당나라와 탈라스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위구르칸국은 지금의 몽골 지역에서 타림분지까지 이동하여 국가를 세웠고 이름을 위구르 제국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때부터 위구르족들이 이슬람국가와 교역도 하면서 관계가 좋아졌고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이슬람화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탈라스 전투에서 패한 당나라는 내부에서 안녹산의 난이 발생하고 자체 군사력으로 진압이 힘들어지자 위구르 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위구르의 도움으로 안녹산의 난을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구르 제국의 군대가 반란을 진압하고 당나라를 떠나지 않고 약탈을 하자 763년 당나라는 위구르 제국에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고 위구르 제국의 군대가 당나라에서 철수할 수 있게 할 정도로 위구르의 힘이 강했던 시기였습니다.
나. 위구르 제국의 멸망
840년 위구르는 티베트의 토번제국과 계속해서 싸우면서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왕위 계승 문제로 왕세자들끼리 분열을 일으키면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위구르가 멸망 후 티베트의 토번제국이 현재 타람분지까지 점령하면서 위구르족은 몽골과 중앙아시아, 중동 아랍지역까지 흩어지게 되었고 일부가 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남아 있게 됩니다.
다. 몽골제국의 등장 및 분열
카자흐스탄 지역의 카라한 왕조와 티베트 토번제국, 몽골 사이에 위구르 땅이 전쟁터가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칭기즈칸이 통일을 하면서 당나라, 티베트를 포함하여 몽골제국에 편입시켰습니다.
칭기즈칸이 죽으면서 몽골제국은 4개로 분리했으며 하나는 원나라, 다른 하나는 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의 차가타이 칸국, 러시아지역의 킵차크 칸국, 이란 지역의 일칸국으로 분리하였습니다.
차가타이 칸국의 왕은 몽골인이었으나 그 외 주요 관리들은 위구르족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왕도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청나라가 차가타이칸국을 점령하기 전까지 국가가 유지되었습니다.
라. 청나라와 중국의 지배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가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1757년 카가타이 칸국까지 멸망시키고 이곳을 신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장은 새로운 땅이라는 의미로 현재까지 불리고 있습니다.
청나라가 카가타이 간국을 점령하자 위구르족들은 종교도 다르고 문화, 언어도 다른데 어떻게 청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 있냐며 발발했고 청나라 지배 이후 50년에 한 번 꼴로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마. 제2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탄생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위그로족도 분열을 반복하다가 1933년 동투르키스탄 제1공화국을 세워 독립을 선언했는데 3개월 만에 소멸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시기 혼란한 틈을 타서 1944년 제2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재건국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마오쩌뚱이 소련의 스탈린에게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중국으로 편입시키겠다고 했고 당시 동투르키스탄도 소련의 영향으로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어 큰 반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투르키스탄 핵심 관료들이 중국으로 병합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으로 이동하다가 비행 시 추락사고로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투르키스탄 정부의 고위 관료들 상당수가 공석이 발생했으며 이때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중국에서 친중성향의 위구르인 지도층을 선발해서 동투르키스탄에 파견하면서 중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되었으며 공식적으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병합되어 중국령이 되었습니다.
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탄생
마오쩌뚱은 1953년 동투르키스탄의 독립운동 불씨를 제거하기 위해 덩샤오핑과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에게 다시는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는 차원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지정해서 소수민족 자치지역화를 할 것을 지시했고 동투르키스탄을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명명하면서 중국의 간접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미국의 정책
미국은 미소 냉전시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핑퐁외교를 통해 중국을 지지했고 중국의 위구로 통치에 대해서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을 펼치면서도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중국의 위구르 탄압 문제에 대해서 인정해 줬으며 중국이 위구르 독립운동단체인 티르키스탄 이슬람당에 대해서 테러 단체로 지정해 달라는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튀르키스탄 이슬람당이 테러단체로 지정하여 결과적으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독립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미국은 이에 대한 견제 수단이 필요했고 이때부터 티베트와 위구르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11월 독립운동 단체인 위구르의 튀르키스탄 이슬람당을 테러단체명단에서 제외했고 2021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위구르의 독립단체들이 탈래반 등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을 더 활발하게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으며 미국에 위구르족 망명정부도 지원하여 활동여건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인권문제 심각성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위구르는 티베트와 함께 중국 내 5개 자치구 중 분리독립 요구가 가장 큰 곳으로 중국의 강력한 민족통합정책에도 중국에 잘 동화되지 않아 계속해서 마찰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통합하기 위해 한족을 위구르 지역으로 대거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쳤으며 1953년 인구조사 시 위구르족이 75%였고 한족이 6%대였는데 현재는 위구르족과 한족이 비슷한 비율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문제는 수십 년간 문제가 되어 왔지만 2019년 위구르 자치구 공산당 서기의 지시사항이 외부로 공개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증가되었는데 지시사항 내용에는 '잡아들여야 할 사람들은 모두 잡아들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2013년 시진핑이 권력을 잡은 이후 신장 지역에 대한 억압은 더 강화되었으며 검문소가 급격하게 증가되고 가방과 휴대전화 검색은 일상이 되었고 가택 수색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등 신장지역에 대한 억압과 통제가 전분야로 확대되었습니다.
2014년 위구르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시진핑 정부는 '반테러 인민전쟁'을 선포해서 한족출신 관리들이 위구르인 가구를 밀착 감시하게 했고 재교육캠프, 교육훈련학교 같은 시설들을 건립하여 수많은 위구르인들을 수용했으며 UN에 의하면 2018년 기준으로 100만 명 이상의 위구르인들이 수감되어 강제로 중국어 교육도 받고 친중화 교육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캠프에 수용되는 인원들이 특별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있으며 여성들의 경우는 수용소 내 강간이나 성고문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 있을 정도로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며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의 출산율을 떨어트리기 위해 임신도 정부에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며 강제 불임, 낙태 등이 일상화되어 있고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침해 행위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호주나 대만, 일본 등을 방문했거나 인접국가인 카자흐스탄 등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몇십 년 동안 수용소에 수감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내에서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해도 수용소에 가두는 등 독립운동과 저항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 자체를 만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가. 풍부한 천연자원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현재까지 자원을 찾는 지질조사를 15%밖에 하지 않았는데 2021년 기준 10억 톤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을 발견했고 타림분지 일대는 중국 내 가장 많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보유한 지역으로 총 160억 톤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내 원유 생산량의 33%, 천연가스 생산량의 35%를 이 지역이 담당하고 있고 심지어 2015년에는 한 농민이 길을 걷다가 10억 3천만 원 상당의 7.85KG짜리 자연산 금을 발견하기도 하는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이고 중국 내 금 매장량의 30%가 신장에 있다고 합니다.
나. 시진핑의 일대일로 정책의 시작점
중국의 일대일로는 육로와 해로를 동시에 개발해서 하나의 거대한 중국벨트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인데 신장 위구르의 수도 우루무치는 카자흐스탄과 터키, 독일까지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이며 타림분지 하단과 파키스탄을 횡단하여 과다르 항구까지 연결하는 도로망도 아라비아해로 최단거리로 접근 가능한 노선으로 일대일로 달성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출발지로 전략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중국 내 5개 자치구의 독립요구 목소리를 사전 차단하는 상징성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티베트와 함께 독립요구가 가장 큰 지역으로 이 두 지역을 잘 통제하면 나머지 자치국에서도 독립요구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특별히 더 관심을 갖고 있고 문제가 커질 경우에는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독립요구 차단은 향후 중국의 안정을 평가하는 척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중국이 장기적으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안정적으로 통제한다면 나머지 자치구들도 큰 저항 없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자치구를 통제하는 데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상징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중국 정부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중국화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으며 엄하게 때리는 정책인 엄마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교육을 명목으로 100만 명이 넘는 위구로족들을 수용소에 격리시켜서 중국화교육을 시키고 있고 그곳에서 탈출한 인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수용소 내에서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는데 외부에서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터키가 최근에 터키어를 사용하는 국가들 간 투르크 협의회를 격상해서 투르크 국가협의회를 만들어서 EU와 같은 형태의 기구를 만들려고 추진하고 있는데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스탄 국가들은 물론 신장 위구르 자치구도 포함되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서방 쪽으로 나가는 일대일로의 시작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역으로 절대적 통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루무치에 사는 사람이 다른 지역의 모스크로 기도를 하러 가더라도 지역이탈 범죄를 적용하여 연봉의 거의 1/6 수준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하고 공산당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임신도 마음대로 못할 정도로 통제를 강화하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탈래반 정권이 같은 이슬람교도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할 경우 무력 독립 시위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경계하고 있으며 왕이 외교부장이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방문해서 양국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터키나 미국, 일본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운동과 위구르 자치구내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하는 활동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고 아프가니스탄 탈래반 일부가 독립운동단체와 접촉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어 중국 정부의 신장 지역에 대한 통제는 더 강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랜 기간 독립된 국가로 당나라까지 물리쳤던 위구르족은 주변국들이 국가 이익에 따라 통합과 분리, 독립을 좌우했으며 특히 중국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위구르에 대해서 다수의 국가이익 고려 시 독립을 인정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물과 기름의 관계인 위구르족에 대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국화 시키다 보니 부작용도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인권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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