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부대라고 불리며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체첸공화국 체첸군이 러시아와 원수지간이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의 히든카드로 참전한다고 전해지면서 체첸공화국과 체첸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체첸공화국 체첸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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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공화국의 지정학적 특징
체첸공화국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코카서스 산맥 일대에 있는 러시아 연방의 자치공화국이나 인종이나 언어, 민족 등 모든 면에서 러시아와는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갖고 있으며 국민 대다수는 이슬람교 수니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체첸은 과거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많은 국가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침략전쟁을 벌였으며 7세기에는 아랍, 10세기에는 셀주크튀르크, 13세기 몽골, 16세기 오스만 제국 등의 침략이 이어졌으며 1859년 러시아 제국의 속령이 되는 등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체첸은 이러한 외세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전 국민을 전사화 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7세부터 검을 다루는 훈련을 하는 등 어려서부터 전사를 키워내고 있다고 합니다.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는 러시아 3대 원유 생산지중 하나로 상당한 양의 원유를 매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 체첸의 중요성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진 캐나다보다 2배 이상 넓은 국토면적의 러시아가 우리나라의 경상북도 만한 작은 체첸자치공화국에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는 걸까요? 1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러시아로부터 끝없이 독립하기 위해 러시아 본토 내 테러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체첸에 대해서 러시아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 러시아 남서부 국경지대에 대한 안정화의 상징성
러시아 남서부 국경지대에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21개의 자치공화국들이 있는데 이중 체첸공화국이 역사적으로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가장 강했고 러시아는 체첸이 독립할 경우 나머지 21개 자치공화국들도 독립요구가 도미노식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영토보전의 이유로 체첸의 분리 독립을 무력으로 저지해 왔습니다.
또한 러시아는 오랫동안 체첸 공화국에 대한 통제권이 있었고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체첸이 독립을 선언했지만 러시아는 영토보전을 이유로 2차례에 걸친 군사력 투사로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 체첸은 러시아 남서부 국경지대 21개 자치공화국들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어 매우 상징성이 큰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대량의 원유매장량, 에너지 주요 운송 경로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는 러시아 3대 유전 중 하나로 엄청난 양의 원유가 체첸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고 체첸을 포함하여 북 코카서스 지역은 카스피해와 러시아의 주요 에너지 수출 경로이기도 합니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에너지를 수출하는 데 있어 중요한 석유 및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통과 경로이고 지역의 안정과 통제는 이러한 에너지 수송 경로를 보호하는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 엄청난 양의 원유매장량과 유럽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통과지역으로 전락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체첸공화국 독립을 막는 것에 대한 상징성
체첸은 어느 소수민족보다 러시아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러시아에 저항한 민족이며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핍박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핍박을 받았고 러시아와 2번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는 월등히 우월한 군사력으로 체첸을 공격하여 강압적으로 체첸을 통제권 안에 넣었고 이렇게 강력한 군사력이 러시아 국가정체성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기 때문에 체첸의 독립을 끝까지 막는 것은 러시아 국민이나 주변국들에게 매우 큰 상징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체첸의 러시아로부터 독립활동 역사
체첸민족은 코카서스 산맥 일대에서 6천여 년 전부터 유목생활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아왔으며 실질적인 독립국가였으나 1859년 러시아제국에 의해 강제로 속령이 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제국에 대한 저항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체첸국민들은 러시아는 슬라브족으로 체첸과 민족도 다르고 종교나 언어도 다르기 때문에 러시아의 통제를 받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별도의 국가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끝없이 제기해 왔습니다.
가. 소비에트연방공화국 ~ 제2차 세계대전 이전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체첸은 북코카서스 토후국의 일부로 짧은 기간 사실상 독립을 경험했으나 1921년 소련 적군이 이 지역을 침공하여 소비에트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내 체첸 자치주가 설립되었습니다.
1936년에는 체첸인접 잉구쉬와 병합되어 체첸-잉구쉬 자치공화국이 되었고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은 체첸 지도자들을 처형하면서 체첸인들의 대규모 저항이 있었으나 스탈린 군대가 12만 명의 체첸인들을 학살하고 저항운동에 참가한 체첸인들 다수를 카자흐스탄과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습니다.
나. 제2차 세계대전 ~ 소비에트연방공화국 해체 이전
소련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체첸과 잉구쉬 민족이 나치독일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1944년 '체첸-잉구쉬 추방'사건으로 알려진 잔인한 작전을 실시하는데 대부분의 체첸인과 잉구쉬 시민들을 강제로 카자흐스탄과 시베리아로 추방을 시킨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23만 명의 체첸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스탈린의 계속된 강경정책 속에서 전체 인구의 절반이 통째로 사라지는 등 민족 말살정책이 강력하게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일부 체첸인들은 코카서스 산악에 숨어서 소련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쳤고 1957년 죽음의 투쟁을 하던 체첸인들의 노력과 스탈린 사망 후 권좌에 오른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의 개혁으로 체첸인들은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 해체 ~ 현재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독립운동 물결이 여러 공화국들을 휩쓸었으며 1991년 11월 체첸-잉구쉬 자치공화국은 조하르 두다예프 대통령이 이끄는 체첸공화국으로 일방적 독립을 선언했고 초대 대통령으로 두다예프가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체첸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력한 경제 봉쇄정책을 펼치면서 체첸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끝까지 유지했으며 결국 무력침공을 강행하게 됩니다.
1) 제1차 체첸전쟁 (1994년 ~ 1996년)
1991년 11월 체첸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한 이후 체첸의 주권과 독립 문제를 놓고 체첸공화국과 러시아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결국 러시아는 1994년 12월 전면적 침공을 강행했고 수많은 체첸인들이 사망했으며 국가 기반시설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체첸인들은 정규군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무장하여 끝까지 러시아에 저항했으며 강력한 체첸의 저항으로 러시아는 체첸 점령에 실패하고 1996년 8월 31일 평화협정을 맺고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평화협정 이후 체첸은 사실상 독립국가로 존재했지만 정치적 불안정, 군벌주의, 경제적 어려움을 포함한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고 러시아 정부는 끝까지 체첸 독립을 인정해주지는 않았습니다.
2) 제2차 체첸전쟁 (1999년 ~ 2009년)
제2차 체첸전쟁은 체첸이 러시아에 대한 지속적인 테러행위를 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1999년 러시아에 있는 모 아파트에서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했고 테러의 배후로 체첸이 지목되었으며 러시아 국민들의 분노와 비난 여론이 확산되면서 러시아 정부는 체첸에 대한 군사작전을 실시합니다.
2차 체첸전쟁은 러시아 푸틴 총리가 등장하면서 1차 때보다 더 잔혹해졌고 수많은 인권문제가 발생했음에도 결국 체첸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체첸인들은 끝까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고 러시아에 대한 테러활동을 이어갔으며 2002년 러시아 모스크바 극장에서 인질 사건이 발행하는데 50여 명의 체첸반란군이 관객과 배우까지 무려 천여 명을 인질로 잡고 '러시아군은 일주일 내로 체첸에서 철수하라'라고 요구했습니다.
러시아는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반란군 모두를 제압했지만 인질 중 150여 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사건이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50여 명이 전사 중 여성전사가 18명이었고 이들은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테러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2004년에는 러시아의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소도시인 베슬란에서는 한 초등학교를 체첸군이 기습해서 어린이와 민간인 300여 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 또한 러시아에 저항해서 싸우기 죽은 남자들의 아내들로 구성된 '검은 미망인'이라는 조직이 테러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자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국가의 독립을 위해 바치는 체첸인들을 러시아인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2006년 러시아군이 체첸 반군지도자 샤밀바사예프를 사살하고 체첸반군들을 계속 죽여나갔으며 체첸반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했습니다.
2차 체첸전쟁 후 인구 100만여 명의 체첸은 80만으로 감소한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체첸인들이 사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체첸공화국 군대의 악명
체첸군의 역사는 체첸공화국의 독립을 위한 러시아에 대한 저항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강력한 탄압과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체첸 무장 단체가 결성되었고 이 단체는 구 소련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자원자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었고 체첸의 독립을 이끈 두다예프 사령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인권유린과 잔인한 행동으로 국제사회에서 위험한 조직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체첸 반군은 1차 체첸 전쟁 간 러시아와 게릴라 전을 통해 러시아에 막대한 피해를 줬으며 결과적으로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탈환하는데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 기간 동안 무차별 폭격과 민간인에 대한 고문과 처형 등 초법적 살인을 자행했고 러시아군 협력자들에 대해서는 잔인한 보복을 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단체로 등장하였습니다.
2차 체첸전쟁 시에도 러시아의 군사적 우위로 인해 많은 피해를 받기도 했지만 러시아와의 게릴라전을 수행하면서 민간인에 대한 고문과 살해 등 광범위한 인권유린 행위를 저질렀으며 악마의 군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2차 체첸전쟁에서 패한 체첸반군은 결국 러시아 보안군에 통합되었고 람잔 카디로프가 이끄는 체첸의 현재 보안군에 '카디로비치'로 알려진 체첸 특수부대와 같은 부대가 포함되었습니다.
2007년 체첸공화국 대통령이 된 람잔카디로프는 2004년 자신의 부친이 체첸 분리주의 단체에 살해된 후 분리주의자들을 증오하게 되었고 2차 체첸 전쟁 때부터 노선을 바꾸어 러시아와 손잡고 분리주의 반군을 공격한 인물로 푸틴에게 잘 보여 30대 초반의 나이에 체첸공화국 총리에서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람잔카디로프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후 분리주의 운동을 벌인 반군들을 대상으로 초법적 살인과 정치적 탄압을 강력하게 추진했으며 세계 인권단체들은 체첸의 공포정치와 언론탄압, 제한된 시민의 자유에 대해서 우려의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제출하고 있으나 카디로프 통제하 보안군은 정권에 대항하거나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인물들을 잔인하게 숙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맺 음 말
거의 1세기에 걸쳐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수했던 체첸의 독립운동은 아직도 진행형이며 그들이 자행한 러시아 대상 테러행위는 러시아국민들과 국제사회에서는 잔인한 행위로 평가받고 있지만 체첸국민들에게 있어서는 대항할 수 있는 수단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선택지가 없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주권을 되찾기 위해 1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가 전체가 해체되기도 하고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사살되기도 하는 등 불행한 역사를 앉고 살아오면서 체첸군과 체첸민족의 잔인성은 그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악마의 부대라고 불릴 정도로 전쟁에서 최소한의 국제적인 법과 룰이 있는데 일반 테러집단들이나 하는 참수행위나 잔인한 고문 등 정상적인 국가의 군대가 해서는 안 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겠지만 우리도 일본의 식민지 시절 애국지사들의 독립을 위한 활동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듯 일본의 입장에서는 테러였지만 우리 민족에 있어서는 독립운동이었기에 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100년이 넘는 피의 역사 기간 동안 러시아와 대척점에 있던 체첸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도와 우크라이나전에 참전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람잔 카디로프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가 체첸 반군에 암살되어 반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고 푸틴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보장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는 하지만 반러감정의 피가 흐르는 체첸군이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또한 이들의 전사기질과 잔인성이 우크라이나 전에서 발생하지 않길 바라고 비극적인 인권유린 행동이 반복되어 체첸의 순수한 독립과 저항의 역사가 전쟁터에서 잔인한 행위가 반복될 경우 국가가 아닌 테러집단의 무장세력으로 밖에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체첸정부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비장의 카드로 등장한 체첸군이 바그너 용병의 자리를 대신하여 전세를 바꿀 카드가 될지 아니면 러시아와 체첸에 대한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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