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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상식 및 사회문제

세계 최고의 국제전투단 프랑스 외인부대

by 이슈 분석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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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구르카 용병, 스위스 용병과 함께 세계 3대 용병으로 꼽히는 프랑스 외인부대는 영화나 소설 등 미디어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데요 국제분쟁지역 해결사로 세계 최고의 국제전투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 외인부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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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외인부대 창설 배경

18세기말 프랑스혁명이 발생하면서 봉건체계를 타파하고 자유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했으나 군사적 재능이 뛰어났던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황제로 등극했고 나폴레옹 몰락 이후 절대왕정으로 돌아가자는 복구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점령했던 유럽의 대부분 국가은 나폴레옹 사망 이후 독립하기 시작했고 프랑스가 추구한 자유주의를 배척했으며 정부의 자유주의 배척에 반감을 가진 많은 유럽의 청년들이 프랑스가 침략자이긴 했지만 자유주의는 괜찮다는 생각에 프랑스로 망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국에서 탄압을 받기 시작한 자유주의 지지 청년들은 프랑스 망명을 선택했는데 문제는 프랑스가 나폴레옹 몰락 후 자유주의를 버리고 절대왕정으로 원복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어 매우 난감한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30년 전쟁을 통해 유럽은 용병의 폐해를 느꼈기 때문에 각국마다 징병제를 통해 시민군을 양성하기 시작했으며 프랑스 또한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노동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일부 노동자들은 프랑스 군에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복고왕정은 제2의 나폴레옹이 나타나서 쿠데타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불안감군을 믿지 못했고 시민군 창설 당시 아프리카 알제리 정복을 시작한 프랑스는 군대는 믿지 못하고 용병은 싫은 상태에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외국에서 들어온 자유주의 신봉자들을 중심으로 군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외인부대의 창설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외인부대는 다양한 국적의 군인들이었으며 프랑스어도 못하고 다국적 언어를 사용해서 일사불란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부대였습니다. 아프리카 알제리에 파견되어서도 전투에 참가시키기보다는 주요 감시지점에 견고한 요새를 구축하여 50여 명 단위로 국적과 인종 등을 고려하여 집단생활을 하면서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임무를 주기도 했습니다. 

외인부대 창설 초기 모습

위에서 알아본 것과 같이 프랑스 정부는 외인부대를 창설하여 국방과 국내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퇴역한 군인들이 프랑스 내 있으면 계속해서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했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장도 제한되는 상황이었으며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자유주의 신봉자들이 대거 프랑스로 몰려들어 이러한 국내 마찰 요소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외인부대를 창설하게 된 것입니다. 

외인부대 창설 초기 모습은 프랑스어도 서툴러서 의사소통도 안되고 식민지 정벌 간 풍토병에 걸려 전투한 번 못해보고 죽는 경우가 많았으며 프랑스 군인들 중 엘리트 장교들은 외인부대 복무하는 것을 꺼리는 등 프랑스 정부에서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했고 투자한 것에 비해 효과가 없다는 평가를 받다 보니 일정기간 명맥만 유지하고 잠시 해체되기도 했으며 1835년 12월 아프리카 알제리 정복전쟁을 위해 다시 부활한 것이었습니다.

창설초기 외인부대 모습은 지금의 외인부대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형편없는 오합지졸 군대였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알제리 정복 전쟁에 참가한 외인부대전투에 투입하지 않고 민족별로 제대를 편성해서 지역방어 임무를 부여하여 감시활동 위주의 단순한 임무만 부여했습니다. 

그러던 중 1835년 스페인에서 왕위계승을 두고 여러 차례 발생한 내전 중 하나인 카롤로스파전쟁에 프랑스는 외인부대원 몇 천명을 파병했는데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했습니다. 비록 목표를 탈환하고 전투에서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적군에게 포위되고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 것이며 병력 생존율이 10%에 불과했지만 이들의 전투의지에 감동을 받았고 가능성을 보면서 국가별 언어를 고려해서 편성했던 부대를 혼합편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외인부대가 용병과 다른 점

프랑스 외인부대는 세계 최고의 국제전투단이라고 불리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소문도 많고 비밀도 많고 전설도 많은 부대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용병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데요 용병은 고용주가 국가가 아닌 회사나 개인, 왕이나 귀족 재벌들일 수 있으며 상대 진영에서 높은 몸값만 부르면 언제라도 넘어갈 수 있는데 외인부대는 프랑스 정규군이기 때문에 1864년 처음으로 체결된 국제협약인 제네바 협약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용병과 외인부대를 칼로 무를 자르듯 명확하게 나누는 것은 모호하지만 영국의 구르카 용병과 프랑스의 외인부대는 용병의 한계를 극복한 정규군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명성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프랑스 외인부대가 특수부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특수부대는 특수전 사령부 예하의 육해공군 특수팀들이며 외인부대는 프랑스군의 신속대응군이며 해외파병군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현재까지 해외에서의 전투경험이 3만 5천 회가 넘는다고 하며 해외 작전지역에 최우선적으로 파견되는 부대다 보니 많은 국가에서 특수부대인 것처럼 인식하나 정예 해외파병군입니다.

외인부대가 프랑스 정예군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외인부대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작업을 통해서 프랑스의 엘리트 장교들을 지휘관으로 임명하고부터입니다. 프랑스 엘리트 장교들은 외인부대 근무 시 전투경험을 쌓을 수도 없었고 상위계급 진출에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근무하는 것을 꺼렸지만 외인부대가 전투에 참여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엘리트 장교들의 필수 근무지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엘리트 장교들이 배치되면서 특수부대 못지않은 강한 훈련체계를 도입했으며 다국적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특성을 인정하고 프랑스라는 국가를 위해 싸운다는 것보다는 부대와 전우들을 위해 싸운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정신교육을 강화했으며 외인부대는 '외인부대는 우리의 조국이다', '죽음아 나는 너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를 모토로 정예 경보병 부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840년 알제리 지역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토마스 로베르 뷔조'라는 장군이 부임하면서 외인부대의 전투방식을 요새를 지키고 감시하는 역할에서 적을 찾아서 전투하는 형태로 바꿨으며 전투경험이 싸이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프랑스 엘리트 군인들도 전투현장에서 복무하길 원했기 때문에 대거 외인부대 근무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프랑스군은 철저하게 장교중심 부대인데 외인부대에 장교들이 근무하는 것을 선호함에 따라 실질적인 프랑스의 전략기동군으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랑스 장교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장교라면 반드시 외인부대를 거쳐야 한다는 말이 있기도 했습니다. 

외인부대는 역사적으로 장교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며 훌륭한 장교들 덕분에 우리가 잘 싸운다는 인식이 병들 사이에 각인되어 있고 많은 장교들이 전선의 최전방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휘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면서 장교들에 대한 충성심 또한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1·2차 콩고내전, 걸프전, 말리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해외파병이 필요한 경우 차출 1순위로 신속하게 전개하여 임무를 수행했으며  수많은 전투를 통해 외인부대의 명성을 만들어 갔습니다.

외인부대 양성

외인부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프랑스 국적이 아니어야 되며 나이는 17살 6개월부터 39살 6개월까지 지원이 가능하다고 하면 1개월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불합격이라고 하고 14세 이상 17살 6개월 이하의 겨우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고 외교마찰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대사관 공증까지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신체검사는 한국의 해병대나 특전사에서 실시하는 기본 신체검사와 입대 체력검정을 턱걸이, 셔틀런 2 종목에 대해서 실시하며 최소기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준비만 잘하면 통과하는 데는 어려움은 없다고 합니다. 

입대자의 국적은 현재 공식적으로 북한, 시리아, 쿠바 등 3개국 국적자를 제외하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문호가 개방되어 있으며 프랑스어권 출신자들이 전체적인 비율은 높고 러시아나 일본, 한국인 등도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5년 기본복무를 하면 상병으로 제대하고 10년 프랑스 체류권을 받을 수 있으며 프랑스 국적 신청은 연장복무를 신청한 3년 차 이상 장병에 한해 가능하다고 합니다. 

영국의 구르카 부대원 선발은 영국군이 네팔 현지에서 선발을 하는데 프랑스 외인부대는 입대를 원하는 사람들이 직접 프랑스에 입국해서 선발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개월간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해야 하고 이후 지속적인 보수교육과 배치된 부대에서 다양한 실전훈련을 이어간다고 하며 과거 미해병대원 일부가 외인부대 정글전 학교 교육에 참가했다가 중도에 포기했다고 할 정도로 훈련강도가 매우 높다고 하며 평소 강한 훈련강도와 잦은 참전으로 자국으로 휴가를 가서 복귀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맺음말

프랑스 외인부대는 특수부대가 아니며 세계 최고의 국제전투단이고 9천여 명이 정규군에 편성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외인부대 명성은 수많은 전투에서 용맹한 전투력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현실적으로 프랑스가 병사들의 조국이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국가에 충성을 강요하지 않고 병사들이 속해 있는 부대에 충성하도록 만들었으며 부대원들에 대한 전우애를 강조하여 전장에서 전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외인부대는 보병연대와 기갑연대, 공병연대, 공수연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특수전 사령부 예하의 코만도와 같은 특수부대는 아니지만 특수부대보다 훨씬 더 체계적인 전술교육과 훈련을 통해 최상의 전투능력을 갖춘 조직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장에서 그들의 능력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인들 중에서 외인부대에 근무하고 싶어서 캐나다 국적을 취득한 후 지원해서 입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할 정도로 프랑스 젊은이들도 도전하고 싶어 하는 부대로 자리 잡았고 아직까지 여군의 입대를 금지하고 있지만 프랑스 여군 중 일부가 관련된 부대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프랑스에선 외국인들로 구성된 부대이지만 프랑스 정규군으로서 확실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부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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