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떠오르는 팥빙수가 얼음이 귀하던 시절 부의 상징이며 상류층들의 전유물이었는데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구경하기도 힘든 것이었습니다. 부자의 상징이면서 가난한 자의 눈물, 빙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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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영화 '남극의 셰프'를 보면 특이한 빙수가 등장하는데,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에 바이러스조차 살지 못한다는 남극의 만년빙, 그 위에서 딸기시럽을 잔뜩 뿌려놓고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서 떠먹는 빙수, 일명 남극 빙수입니다.
남극기지에 살고 있는 연구원들이 먹었던 빙수인데 남극 빙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팥빙수를 비롯해 일본의 카키 고오리, 중국의 바오빙 등 나라마다 여러 종류의 빙수가 있는데 소개해볼까 합니다.
국가별 빙수의 역사
가. 한국
빙수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먹으면서 여름에도 겨울의 풍미를 만끽했던 행운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조선말, 고종 때의 외교관 김기수라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체결로 일본에 건너간 수신사 김기수는 일본 외무대신과의 만찬에서 디저트로 얼음 즙인 빙즙을 먹었다고 했는데 '그릇에 담긴 얼음 즙의 생김새가 마치 가짜로 만든 산 같은데 오색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맛은 달아서 먹을 만하지만, 입속에 한 번 들어가면 가슴까지 서늘하니 이 또한 괴이하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얼음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었는데 한 모금만 들어가도 치아가 시리니 어떤 방법으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신기해했습니다.
빙수처럼 생긴 얼음 음료를 신기해하며 기록한 것을 보면, 조선말까지 우리나라에는 빙수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빙기가 없던 시절, 한여름에 빙수를 먹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겨울에 저장했던 얼음을 여름에 꺼내 써야 했기에 극소수 부유층만이 즐길 수 있었던 사치식품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빙수는 과학기술이 진보한 현대에 발달한 식품일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개화한 일본 역시 조선의 수신사 김기수가 처음 빙수를 맛보았을 무렵에 빙수가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는 빙수라는 말은 보이지 않고 빙과를 먹은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얼음을 깨어 화채에 넣거나 얼음쟁반을 만들어 과일을 차갑게 식힌 빙과를 즐긴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나. 일본 1869년
요코하마에 처음으로 빙수 파는 가게가 문을 열었고 1887년 손잡이를 돌려 얼음을 가는 수동식 빙수 기계가 처음 만들어져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빙수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고 합니다. 빙수가 널리 퍼진 것은 193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기계식 빙수기는 일본에서 처음 개발됐지만 빙수의 원조를 일본이라고 하기에 어려운 것이 빙수는 옛날부터 동아시아에서 널리 사랑받았던 식품이기 때문입니다.
11세기 무렵 이미 지금과 같은 팥빙수, 과일빙수, 요구르트 빙수, 시럽 빙수 등 온갖 다양한 빙수가 동아시아에서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11세기 일본 문헌에는 얼음을 칼로 갈아 낸 후에 쉽게 녹지 말라고 금속그릇에 담아서 그 위에 칡즙을 뿌려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 송나라
팥빙수는 중국 송나라 때 이미 등장했습니다. 송나라의 정사를 기록한 역사책 송사를 보면 '복날이 되면 황제가 주요 대신들에게 팥빙수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밀사빙이라는 얼음으로 글자를 봐서 얼음에다 꿀을 뿌리고 팥소를 얹은 빙수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음에 꿀을 뿌리고 단팥을 얹었다고 빙수라고 추정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합니다. 얼음을 곱게 갈아야 빙수가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송나라의 밀사빙 또한 얼음을 갈아 꿀과 팥을 얹은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에 빙수로 추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송나라는 빙수의 천국이었습니다. 송나라 시인 매요신은 얼린 요구르트를 먹는다고 노래한 시도 있습니다.
이런 요구르트 빙수부터 앵두를 얹은 과일빙수, 심지어 지금의 와인 빙수와 같은 매화주 빙수까지 보이고 시장에는 전문점까지 들어서서 다양한 빙과류를 팔았다고 합니다.
송나라에서는 여름에 쓸 얼음을 겨울에 캐서 저장하는 빙고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해서 가능했다고 하며 얼음 수요가 늘고 갋도 내려가면서 빙과업이 발단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맺음말
옛날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여름에 얼음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빙수와 빙과는 물론이고 얼음으로 생선을 저장했고, 심지어 얼음조각으로 더위를 식혔다는 기록까지 있습니다.
얼음을 그만큼 많이 사용했으니 상류층은 호사롭게 여름을 지낼 수 있었지만 반대로 서민들은 혹독한 여름을 견뎌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빙수는 부의 상징이었으며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상류층들이 즐기는 음식문화 정도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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