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고구마를 좋아하십니까? 추운 겨울 할머니가 화롯불에 구워줬던 군고구마의 맛을 기억하십니까? 국민 간식으로 영양이나 맛에서 그 어떤 것보다 탁월한 고구마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요? 아시아를 구한 영웅! 고구마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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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글
혹시 최근에 고구마 맛탕 드셔보신 적 있나요?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 준 맛탕을 저도 참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데 엄마 생각이 나서인지 맛탕은 달달한 맛, 그 이상의 추억이 담긴 간식으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구마 맛탕은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추억의 간식이라고 합니다. 한-중-일 공통의 글로벌 푸드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국가별로 고구마가 어떤 요리로 발전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국가별 고구마 맛탕
일본에서는 고구마 맛탕을 다아가쿠 이모, 즉 대학 고구마라고 하는데 왜 이런 이름이 생겼을까요? 1910년과 20년대 일본 대학가 음식점에서 튀긴 고구마를 조린 설탕물에 비벼 팔았던게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설은 이 무렵 가난한 동경대학생이 학비를 마련하려고 맛탕을 만들어 판 것이 유행을 해서 대학 고구마로 부르게 됐다고도 하는데 어쨌든 일본 고구마 맛탕에는 옛날 대학 시절의 낭만과 추억이 따뜻하게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고구마 맛탕은 추억의 음식인데 많은 중국 사람들이 고구마 맛탕을 주로 추운 겨울에 어머니가 만들어 준 따뜻하고 달콤한 음식으로 기억합니다.
베이징의 골목인 후통에서 뛰어놀다 밥 먹으란 소리에 집으로 뛰어 들어가 먹던 별미였다고 하는데 맛탕을 중국에서는 빠스라고 합니다.
쫀득해진 설탕이 실처럼 길게 늘어지는 모습이 마치 실을 뽑는 것 같아 생긴 이름으로 청나라 초기에 발달한 요리입니다.
겨울철에 차가운 과일과 채소를 보다 따뜻하고 달콤하게 먹으려고 만든 고급 디저트에서 비롯됐는데 고구마 맛탕인 '빠쓰띠과'는 청나라 말기에 대중적인 간식으로 중국 전역에 퍼지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중-일 세 나라에서 고구마 맛탕은 모두 따뜻하고 정감어리 음식이기도 하지만, 고구마가 아시아 사람들한테는 특별한 식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3. 고구마의 유래
고구마는 중남미가 원산지인데 콜럼버스가 미 대륙에 도착한 이후 유럽을 거쳐 아시아, 그리고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로 전해지는 과정이 아주 특별합니다.
감자와는 달리 유럽에서 고구마를 제대로 키우는 데 실패한 스페인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부족한 식량을 메우려고 16세기 중반, 필리핀에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심었습니다.
그런데 16세기 말 필리핀과 무역을 하던 중국 남주 푸젠 성 출신의 한 화교가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고구마를 보고는 식량난에 허덕이던 고향에 가져가면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이 고구마 종자가 외국으로 새나가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기에 고려 말 문익점이 붓 뚜껑에 목화씨를 숨겨 가져와 퍼트린 것처럼 고구마 줄기를 밧줄처럼 꼰 후 그 사이에 종자를 숨겨 푸젠성에 들여와 퍼트렸습니다.
이렇게 전해진 고구마는 중국 남주의 식량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는데 16세기말 170만 명이었던 푸젠성 인구가 19세기 중반에는 10배가량 늘어나는데 고구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고구마가 17세기 초에 중국 복건성에서 당시 독립국이었던 류큐 왕국, 지금의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 본토에 처음 전해졌고 여러 경로를 거쳐서 일본 곳곳에 고구마 종자가 전해졌지만, 전체적으로 퍼지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당시 봉건시대였던 일본에서 고구마가 백성들의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양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쟁이 나면 군량으로 쓰일 수 있는 군수물자였기 때문인데 그래서 지방 영주는 고구마가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18세기 초, 전국의 절을 순례하던 한 승려가 잠시 머물던 농부의 집에서 고구마를 봤습니다. 당시 외부 반출금지령이 있었지만 "여러 사람을 위한 일이라면 나라의 법을 어기는 것쯤 두렵지 않다."며 목숨을 걸고 고구마를 몰래 숨겨 고향으로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어 1732년 일본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 다른 곳에서는 수천 명이 굶어 죽었지만, 고구마를 심은 곳에서는 아사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구마의 유용성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졌고 이후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서 고구마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역시 근세 후기 고구마 재배 지역에서의 인구증가율은 전국 평균을 웃돌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4. 우리나라에는 고구마가 언제 전해졌는가?
우리나라에는 언제 처음 고구마가 전해졌을까요? 우리나라에는 18세기 후반이 1763년 처음 전해졌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서 상당히 늦은 편입니다.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엄이 대마도에서 종자를 구해서 지금의 부산 동래에 심은 것이 고구마 재배의 시작입니다. 조엄이 쓴 해사일기에 고구마 전래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밥 대신 먹을 수 있어 구황작물로 좋다고 봤고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를 가뭄이 들었을 때 부모님 봉양을 위해 효자가 심는 마 이라고 해서 '고우시마'라고 한다며 한자로 '고귀위마(高貴爲麻)'라고 적었는데 이를 고구마의 어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온 고구마는 조선 후기 뜻있는 실학자들의 노력으로 널리 퍼지게 됐으며, 그중에는 벼슬도 마다하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고구마 연구와 보급에 힘을 쏟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5. 맺음말
고구마에 담긴 역사와 스토리가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시아의 기근을 해소하고 서민을 살린 고구마는 오늘날에도 간식은 물론 건강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에게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는 식품이 되었습니다.
음식도 알고 먹으면 그 속 깊은 이야기들이 맛을 더하는데 고구마에 대한 유래와 역사를 알고 먹으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을 구한 고구마가 단순히 어느 나라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힘든 시절 굶주린 배를 채워주고 기근을 해소시켜 주던 고구마가 진정한 생명의 식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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