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소속도 이름도 계급도 없이 최전선인 돈바스 지역에서 치열한 대러 전투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인 중심의 자유 러시아 군단은 이번 러시아 본토를 공격한 것이 본인들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이들이 어떤 조직인지 알아보겠습니다.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글》
자유 러시아 군단 편성 및 주요 활동
자유 러시아 군단은 원래 미국과 영국에서 온 의용군들과 벨라루스인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전투부대이며 러시아군인들 중 포로가 되거나 투항한 자들 중에서 지원서를 받아서 선발된 인원들이 합류를 했고 우크라이나 지역에 거주했던 러시아인이나 러시아에서 거주하고 있던 일반 러시아인들도 대거 지원해서 러시아인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이 되었습니다.
특히 러시아인들이 지원서를 내면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하고 광범위한 신원조사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기초훈련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선발과정부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유 러시아 군단 창설 초기에 일부 러시아인 첩자들이 잠입하여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선발과정이 까다롭다고 합니다.
이들은 동족이면서 동료였던 러시아군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적이 없는 '악당과 살인자들'과 싸우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의 독재로부터 러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군단에 합류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부차 학살에 대해서는 러시아를 대신하여 사과문을 올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반러 활동을 우크라이나군 통제하에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자유 러시아 군단" 명칭 유래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생포한 소련군 포로들 및 동유럽 점령지 징집병들을 <동방대대>라는 명칭으로 편성하여 전투에 투입시켰고 이들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투입시켰습니다.
또한 소련군 포로들을 모집해서 1942년부터 '자유 러시아군'이라는 러시아 해방군을 운영했는데 독소 전쟁 당시 소련 최고의 명장인 주코프와 비슷한 수준의 명성을 얻었던 안드레이 블라소프 장군이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 포로가 되었고 1944년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라는 정권의 수반이 되었는데 이 정권의 군대 이름이 바로 자유 러시아군이었습니다.
이들은 볼셰비키 혁명에 반대하여 내전을 벌인 백군을 계승한다고 했으며 러시아의 백청십자 깃발을 사용했습니다.
병력은 소련군 포로들 중 지원자를 받아서 2개 사단 규모로 편성을 했고 전쟁 막바지인 1945년 초부터 제대로 무장을 하여 전투에 투입되었고 옛 전우이며 동족인 소련군과 싸우다가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미군에 항복했으나 이미 얄타회담에서 동부전선 포로들은 모두 소련군에 넘긴다는 협약이 체결된 상태여서 블라소프 장군과 자유 러시아군은 대부분 소련군에 넘겨졌습니다.
1946년 8월 블라소프 장군을 포함한 지휘부는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기타 장병들은 시베리아 수용소에 수용되었고 스탈린이 사망하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으며 이후에도 반러전쟁을 벌인 사람들로 낙인찍혀서 온갖 핍박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자유 러시아 군단이라는 명칭은 2차 세계대전시 나치 독일에 포로가 된 러시아 군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자유 러시아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의 자유 러시아 군단이 백청백기를 사용하는 것도 과거 자유 러시아군이 사용했던 백청백기와 동일한 것 등을 고려 시 오늘날 우크라이나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유 러시아군단이라는 명칭은 자유 러시아군에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자유 러시아군과 자유 러시아 군단의 차이점
전쟁에서 죽고 다치는 것 다음으로 두려운 것이 적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일인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유 러시아군에 가입하는 것은 서슬 퍼런 나치에 포로로 잡혀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살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나치에 충성심을 표시하기 위해 비자발적으로 러시아군인들이 조직한 군대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간 발생하는 부상자 및 포로 등을 보호하는 국제법들이 있기는 했으나 법을 적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었고 많은 포로들이 강제노동이나 학살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1949년 제네바 협약에 포로나 부상자에 대한 4개의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이를 적용하는 국가에 따라서 강제성이 많이 부족해서 포로들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는 계속해서 발생했습니다.
국제법적으로 포로에게 해서는 안 되는 가장 최악의 행위는 포로를 총알받이나 지뢰제거 등에 강제 동원하거나 자국 군대에 편입하여 전투에 참여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독일 나치는 국제법을 지키지 않았으며 제네바 협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6.25 전쟁 시 북괴군이 국군 포로 상당수를 '해방전사'라는 이름으로 북괴군에 강제 편입하여 병력으로 활용하고 이들을 포로 교환에서 제외시켜 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중국 또한 국공내전 때 국민당군의 사단과 군단이 부대 단위로 홍군에 투항하여 그대로 편입시키기도 하는 등 제네바 협약은 강대국의 논리대로 적용하고 시행되었고 자유 러시아군도 나치 독일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번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자유 러시아 군단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에 투항하거나 포로가 된 러시아군인들도 일부 있지만 기본은 영국과 미국에서 온 의용군들과 벨라루스인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이었고 이후에 러시아인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군대의 주력이 된 것입니다.
또한 자유 러시아 군단에 참여한 러시아인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입대했으며 우크라이나에서 살던 러시아인과 러시아에 있던 러시아인들이 푸틴 독재체제에 반대하여 입대 헸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포로나 부상병들을 강제로 군에 편성하여 최전선 총알받이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대러시아 군대를 러시아인들 중심으로 만든 것입니다.
일부에서 과거 2차 세계대전시 자유 러시아군과 다를 게 없다고 하지만 입대한 자원들의 입대동기나 입대하는 과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과 푸틴의 독재를 무너트리고 러시아를 해방시키겠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자유 러시아군이 사용했던 백청백기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인데 통상 반전운동을 하는 러시아인들이 사용했던 것이기 때문에 과거 2차 세계대전시 자유 러시아군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총 평
제네바 협약에 의해 전쟁포로를 자국 군대에 편입시켜 최전방 총알받이로 쓰는 것은 엄격히 따지면 국제법 위반이고 전쟁범죄 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유 러시아 군단은 자발적으로 합류한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제네바 협약 적용 대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전 최고의 격전지로 꼽히고 있는 바흐무트 지역에서 러시아의 용병그룹 바그너 용병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에 반기를 든 러시아인 중심 자유 러시아 군단이 대응하고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양국의 대리전을 러시아인 용병들끼리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 러시아 군단이 러시아 본토인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면서 확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전에서 러시아의 중요 보급로 및 지원기지 역할을 맡고 있는 지역이고 핵탄두까지 일부 저장되어 있는 주요 도시에 대한 자유 러시아 군단의 공격에 푸틴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자유 러시아 군단의 활동이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자유 러시아 군단이 효과적으로 통제되지 않을 경우 확전뿐만 아니라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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