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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및 분쟁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드미르 젤렌스키 알아보기

by 이슈 분석 202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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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젤랜스키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댄스 경연대회 우승자, 정치풍자에 능한 코미디언 등으로 불렀으나 지금은 우크라이나를 구한 영웅으로 90% 이상의 지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젤랜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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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라디미르 젤랜스키 출생 및 성장과정

 블라디미르 젤랜스키는 1978년 1월 우크라이나 중부 크리비리흐라는 지역에서 유대인 집안에서 출생했고 부친인 올렌산드로 젤랜스키는 크리비리흐 경제연구소 교수였으며 어머니 림마 젤랜스키 또한 공학자로 중산층 이상의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특이한 이력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에 그의 아버지가 몽골의 에르데넷트라는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되자 그도 아버지를 따라서 몽골에서 4년간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젤랜스키는 어릴 적 꿈이 국경수비대나 외교관, 번역가 등이었다고 하며 우크라이나 최고 명문대학인 키이우 국립경제대학에 들어가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했으나 대학 졸업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했는데 그에게는 어릴 적부터 예능에 남다를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고 17세에는 당시에 우크라이나에서 유명한 경연 프로그램인 KVN이라는 곳에도 참가를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소련 시절에 시작한 코미디 경연대회로 원래 소련의 일반 참가자들만 대결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구소련 국가들을 비롯하여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도 참가가 가능해졌습니다.

젤랜스키는 이 대회에서 10대 후반부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20살이 되던 1997년 우크라이나 대표팀에 뽑혔고 우승까지 하면서 '크바르탈 95(95번 구역)'이라는 코미디언 팀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코미디언의 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 드라마 한 편으로 국민 배우가 된 젤랜스키

2003년 9월 27세에 나이에 8년간 연애 끝에 올레나 기야슈코(젤랜스카) 여사와 결혼을 하며 슬하에 1남 1녀의 자녀를 두게 됩니다.

크바르탈 95라는 코미디언 팀은 이후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로 성장했고 우크라이나의 유력 방송국인 1+1 TV나 인테르 TV와도 계약을 맺을 정도로 자리를 잡으면서 젤랜스키의 연예계 입지는 점점 확대 됩니다.

그러다가 2005년 '이브닝 크바르탈'이라는 쇼 프로그램까지 성공시키면서 우크라이나의 국민 MC로 유명세 얻었으며 2006년 우크라이나판 '댄싱 위드 스타'에 출연해서 우승하면서 대세 연예인으로 부와 명성을 쌓아 갔습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인테르 TV의 이사겸 총프로듀서로 활동 영역까지 넓혀가게 되는데 코미디언으로 시작해서 배우, MC, 기획자, 각본가, 제작자까지 못하는 게 없는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그가 TV 드라마 '국민의 종'에 출연하면서 그의 운명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종'이라는 드라마는 크바르탈 95에서 제작하여 2015년 우크라이나 1+1 TV에서 방영된 시트콤으로 젤랜스키는 30대 역사 교사역을 연기했는데 부패한 정치에 환멸을 느낀 역사 교사가 대선에 출마해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친구들을 장관에 임명하여 부패한 정치인들을 몰아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시청률이 평균 40~50%로 엄청난 시청률로 국민드라마가 되었고 그의 인기 또한 최고의 정점에 도달했으며 기자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혹시 진짜로 대통령이 될 마음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3.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인으로 탄생한 젤랜스키

2018년 3월 국민의 종 출연진들이 시트콤 속 정당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서 '국민의 종'이라는 신당을 창당하면서 젤랜스키의 본격적인 정치활동은 시작되었고 그해 12월 31일 공식 대선출마를 선언했으며 초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현직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나 총리를 지낸 율리아 티모센코를 따돌리고 줄곳 선두를 달렸는데 이것은 기존 정치인들이 부패, 탈세, 극우, 매국 등으로 국민들의 불신이 가득한 상황에서 정치의 때가 묻지 않은 젤랜스키는 청렴하고 부패척결과 세제개편, 부동산 시장 투명성 확보 등 당시 국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정책들을 선보였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분쟁도 해결하겠다고 공언하여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의 대통령 선거유세도 기존의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코미디 공연형식으로 진행했고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1차 투표에서 30%, 2차 결선투표에서 73% 이상을 득표하면서 제6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당시 42세로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통령 당선 후 곧바로 조기총선을 실시하아여 의회를 장악하고자 했으나 기존 기득권층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내각 총사퇴를 요청한 뒤 바로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대통렬령에 서명했고 이후 열린 조기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새로운 대통령으로 마음껏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4. 무능한 대통령에서 우크라이나의 영웅으로 재부상

대통령에 당선된 젤랜스키는 집권초기 대규모 도로 확충과 디지털 서비스 확대 등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며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열심히 했으나 현실은 시트콤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돈바스 지역의 내전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부패척결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을뿐더러 국가정보국장이 국가정보국에서 붙잡은 러시아 스파이를 러시아로부터 금품의 대가를 보고 풀어주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러시아 스파이들이 러시아로 돌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고도 합니다.

이렇듯 국가운영에 있어 그가 임명한 최측근들이 계속해서 부패와 연루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국가요직에 임명한 사람 중 크바르탈 95 출신이 36명으로 결과적으로 그의 발목은 잡은 것은 인사실패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코미디 극단 출신들을 보좌진으로 임명하고 안보분야와 같은 전문성이 요구괴는 직책에 비전문가들을 임명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대통령궁 실장에 영화제작사 대표, 국가정보국장에 크바르탈 95 스튜디오 대표 감독, 안보보좌관에 시나리오 작가 등이 임명되었지만 시트콤에서는 부패한 정치인들을 몰아내고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는데 현실은 전문성이 없이 지인들로 내각을 구성하면서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021년 말부터는 러시아와의 분쟁이 고조되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까지 급락했고 2022년 1월 여론조사에서는 블라디미르 젤랜스키의 재선을 원한다는 응답이 23%에 불과할 정도로 지지도가 추락했으며 러시아를 자극하는 발언과 친 나토 성향 행보를 계속하면서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국민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군사력을 투입하면서 양국은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초기에는 젤랜스키 대통령이 도피했다는 도피설도 나왔지만 바로 다음날인 2월 25일 수도 키이우에 남아 국민 항전을 독려하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재부상하는 계기가 되었고 국제사회에서 비중 있는 인물이 될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습니다.

현재젤랜스키 대통령의 지지율은 90%를 넘어가고 있으며 그의 말과 행보는 전 세계 언론들을 통해 실시간 전파되는 등 국제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용감한 결정이 결국 국민들을 통합하고 국가를 구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국민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더라도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은 피하는 올바른 주권 행사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 우크라이나 및 젤랜스키 대통령 관련 추가 정보는 대한민국 외교안보연구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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