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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상식 및 사회문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분리, 아일랜드 독립 바로 알기

by 이슈 분석 2024. 5. 13.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분리

아일랜드섬에 위치한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가 아닌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영국의 연합왕국에 편입된 것에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갖고 있고 2012년 한 때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로 편입을 위한 국민투표도 하는 등 마찰의 불씨가 남아 있는데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왜 분리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지리적 위치

아일랜드섬은 그레이브브리튼섬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일랜드섬 북동쪽에 영국 연합 왕국의 한 국가인 북아일랜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동쪽은 아일랜드 해, 서쪽은 대서양과 접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지리적 위치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지리적 위치

아일랜드의 인구는 약 5백여만 명이며 유럽연합과 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 연합 등의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대부분의 수치들이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이며 아일랜드 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아일랜드섬은 현재의 북아일랜드가 위치한 곳이 얼스터이며 동부지역은 더블린, 서부는 코노트, 남부는 먼스터 등 4개 지역으로 크게 분류가 됩니다. 

얼스터는 총 9개의 주로 구분되어 있고 이 중에서 6개 주가 북아일랜드 지역이며 3개 주는 아일랜드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북아일랜드는 영국 연합왕국이고 아일랜드는 독립국임에도 불구하고 럭비나 크리켓 국가대표팀 선발 시 아일랜드섬 전체가 한 팀으로 출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같은 국가로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는데 전혀 다른 국가이기도 합니다.

아일랜드섬 지역구분
아일랜드섬 지역구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분리

아일랜드 공화국군을 IRA(Irish Republican Army)라고 부르며 아일랜드에서 결성된 무장단체이며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활동을 했고 1910년 말 아일랜드 독립전쟁에도 참전했으며 1970년과 80년대 많은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지만 2000년도부터 무장 투쟁을 포기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일랜드 공화국군은 2년 6개월간 벌어졌던 영국-아일랜드 전쟁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아일랜드 독립의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요 아일랜드 독립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영국-아일랜드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일랜드 독립전쟁

아일랜드 독립전쟁은 1919년부터 1921년까지 2년 6개월 간 아일랜드 독립전쟁이 있었으며 1921년 12월 영국-아일랜드 조약이 체결되면서 아일랜드 자유국 지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20년 영국은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를 분할하여 자치권을 주는 아일랜드 정부법을 통과시켰는데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남아 있었지만 남 아일랜드는 독립전쟁을 통해 완전한 독립국으로 되었던 것입니다. 

영국은 1921년 아일랜드를 "아일랜드 자유국"이라는 이름으로 호주나 캐나다와 같은 자치령으로 지정할 것을 약속했지만 아일랜드의 독립세력들은 자치령 지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며 군사권과 외교권을 영국 본토에서 영국 국왕이 행사하기 때문에 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 국왕을 대신해 나와 있는 총독의 통제하에 들어가는 것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은 아일랜드 의회에 의한 조약 비준을 위해 남아일랜드 의회와 영국 의회의 동의가 필요했고 조약 사실이 누설되면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아일랜드 의회에서 겨우 비준되어 정식으로 법제화했으나 조약 사실의 누설은 아일랜드 내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1922년 12월 왕실 선언을 통해 아일랜드 자유국은 유효화되었습니다. 

 

아일랜드 내전

아일랜드 내전은 영국-아일랜드 조약 찬성파와 반대파간 갈등에 의해 발생했으며 찬성 파는 조약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이것을 발판으로 완전한 독립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반대파는 완전한 독립도 제한되고 북아일랜드와의 분단 등의 이유로 반대하면서 양측 간 마찰은 증가했습니다. 

아일랜드 의회에서 조약 비준안이 근소한 차로 통과되면서 조약 반대파들을 중심으로 무장세력을 만들어 아일랜드 내전이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일랜드 내전은 결과적으로 조약 찬성파의 승리로 끝났으며 조약 반대파의 에이먼 데 벌레라는 1926년 무장투쟁을 포기하고 합법 투쟁을 주장하며 자유국의 정계 참가를 선언해쏘 공화당을 만들어 의원에 당선되면서 아일랜드 중앙정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32년에는 공화당이 집결하면서 아일랜드 독립에 대한 주장이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정권을 잡은 공화당은 1937년 국가명을 아일랜드 자유국에서 아일랜드로 바꾸고 신헌법을 선포했고 대통령직을 신설하고 영국 국왕이 임명하는 총독 집무실을 폐쇄했고 영연방에 속하지 않음을 선언했습니다. 

 

 

아일랜드의 영연방 탈퇴

아일랜드는 2차 세계대전시에도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며 영국의 윈스턴 처칠의 연합군 편성에 동참하지 않았고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1949년 영연방을 탈퇴하기까지 했습니다.

영국은 아일랜드가 1948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일랜드 공화국 법을 제정해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예우함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국 1949년 영국은 아일랜드의 영연방 탈퇴를 승인했습니다. 

아일랜드의 영연방 탈퇴는 영연방 탈퇴에 대한 강한 움직임이 남아 있는 스코틀랜드를 자극했고 스코틀랜드는 최근까지도 영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위한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기도 합니다. 

스코틀랜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의 자치권 이양 주민 투표를 실시하기도 했으며 민족주의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스코틀랜드가 호심탐탐 영연방에서 탈퇴하기 위한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국의 중앙정부는 연방국가들의 활발한 독립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1998년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법률을 제정했고 웨일스는 1998년 정부법을 통해 자치정부와 자치 의회가 설립되었으며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했고 영국 국회가 2006년 웨일스 정부 법을 통과시켜 자치가 더욱 강화되기도 했습니다. 

웨일스와 마찬가지로 북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도 법역이 잉글랜드와 통합되어 있지만 점차 법이 달라지고 있는 추세이고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도 자체 법을 제정하고 자치권을 강화해 가면서 독립에 대한 움직임이 지속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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