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이라는 같은 종교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라진 수니파와 시아파는 예수를 믿는 종교이면서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등으로 갈라진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다른 종교와 달리 같은 종교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는 왜 분열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 배경
같은 종교이면서 14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분열이 계속되고 있는 이슬람의 분열 배경을 살펴보면 기원전 6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슬람 창시자이며 예언자였으며 하나님의 마지막 예언자라고 믿었던 무함마드가 기원전 632년 후계자를 정해놓지 않고 사망하면서 무함마드의 뒤를 이을 지도자를 정하는데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슬람은 더 이상 예언자가 없기 때문에 무함마드를 따랐던 원로들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후계자로 뽑아야 한다는 사람들인 수니파와 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 중에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는 사람들인 시아파로 나뉘어 갈등이 격화되었습니다.
이슬람의 새로운 지도자 선출을 두고 팽팽한 대립을 하다가 결국 다수를 차지했던 수니파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칼리파, 즉 이슬람 국가의 지도자이며 최고 종교 권위자를 뽑기로 하면서 칼리파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무함마드 알리의 유일한 혈통이자 사촌인 무함마드 알리라는 사람이 있었지만 다수의 수니파에 의해 무함마드와 함께 활동을 했던 수니파 아부바크르를 1대 칼리파(632년~634년)로 선출하였습니다.
이렇게 1대 칼리파가 선출되면서 이슬람은 통합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을 했으며 이어서 2대 칼리파(634년~644년)도 수니파인 오마르가 선출되었고 3대 칼리파(644년~656년)도 수니파인 오스만이 선출되면서 거의 24년 동안 수니파에서 칼리파가 나오면서 안정을 찾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4대 칼리파(656년~661년)가 시아파인 무함마드의 유일한 혈통 "알리"가 선출되면서 갈등의 씨앗이 싹텄고 수니파에 의해 4대 칼리파인 알리와 그의 두 아들이 암살되면서 수니파와 시아파는 완전히 분리되면서 분열이 가속화된 것입니다.
※ 위에서 설명한 수니파와 시아파간 갈등 배경을 한 장의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시아파인 4대 칼리파 알리가 암살당한 후 수니파가 5대 칼리파에 선출되면서 이를 시아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알리의 두 아들도 수니파에 의해 사망을 하자 알리가 사망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 숨어 있고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수니파와 시아파는 분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 수니파와 시아파 차이점 요약
구분 | 수니파 | 시아파 |
사상 | 수니는 "수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 "수나"는 무함마드가 생전에 했던 말과 행동 |
시아는 "알리"의 추종자라는 뜻 무함마드의 사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정통 후계자로 모심 |
주요국가 | 사우디 아라비아 (이슬람 최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갖고 있음) |
이란 |
비고 | 이슬람 정통파 자부, 수니파가 세운 칼리파가 오랫동안 이슬람 세계 지배 전 세계 19억 이슬람교 신자 중 약 15억 명이 수니파 |
알리의 후손이 대대로 지도자가 되고 있음 |
수니파와 시아파간 대표적인 분쟁사례
오늘날 탈레반이나 IS 등 일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서방권을 상대로 한 테러가 자주 발생하면서 이슬람교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졌고 이슬람 국가 전체가 마치 서방과 대립각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같은 이슬람교 간 종파갈등이 훨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슬람교이면서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되어 종교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요 현대사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간 대표적인 분쟁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이란-이라크 전쟁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혁명으로 혼란상태였던 이란을 1980년 9월 침공하였으며 침공 명분은 1975년 알제이 협정에서 양국 간 현안문제였던 샤트알아랍 수로 경계선을 이라크가 이란에게 불리하게 양보한 것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다수의 국민들이 시아파지만 사담 후세인을 비롯한 수니파 왕정국가로 시아파 혁명 정부인 이란과 지속적인 마찰이 있었고 샤트알아랍 수로 확보는 물론 남부 석유지대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 외에도 혁명 정권을 타도한 후 수니파가 지배하는 국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침공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이란의 반격으로 전쟁은 8년간의 소모전으로 흘렀으며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으로 막을 내렸고 양국에 상처만 남기는 결과를 낳았으며 시아파와 수니파간 갈등이 증폭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 시리아 내전 : 2011년 4월부터 바샤르 알아사드 시아파 정권과 수니파 반군 간 내전이며 중동에서 발생한 아랍의 봄의 연장선에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시라아내 종교전쟁입니다.
다. 예맨 내전 : 1990년 합의 통일했던 예맨에서 남예맨 주도의 내전이 발생했으나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으로 북예맨이 승리해서 1994년 다시 통일을 했으나 2015년 시아파의 맹주 이란의 지원을 받은 후티 반군이 수니파 하디 정부를 몰아내고 북예맨 전역을 장악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 양상이 되었습니다.
라. 사우디와 이란 간 단교 : 사우디에서 이란의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란이 반발하면서 이란과 사우디 간 교역 및 항공편 등을 중단했으며 단교를 선언했고 종파 갈등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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