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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상식 및 사회문제

현존하는 최고 투자자 워런버핏 알아보기

by 이슈 분석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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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사이먼스, 마크 모비우스, 레이 달리오 그리고 워런 버핏 하면 떠오르는 공통된 단어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투자의 귀재"라는 두 단어일 겁니다. 이들 중 현존하는 최고령 최고 투자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워런버핏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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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버핏의 출생 및 성장배경

워런버핏은 1930년 8월 30일 미국의 네브래스카 주에 있는 오마하시에서 태어났고 올해 나이 93세이며 현재까지 오마하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버핏의 가문은 신용과 자립심을 중요시했다고 하며 그의 할아버지는 버핏에게 '음식은 외상으로 줄 테니 나중에 경제적 능력이 되면 갚아야 한다'라고 할 정도로 자립심을 강조했다고 하고 그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주식 중개인이자 의회 의원이었고 그의 어머니 레일라 버핏은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자립심을 강조하는 집안에서 성장하다 보니 6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껌이나 콜라 방문판매를 했다고 합니다. 11살 때는 식료품 가게에서 매장관리와 트럭 상하차를 하면서 120불을 모았는데 현재가치로 2100불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자금을 이용해서 인생 첫 투자를 했는데 Cities Service라는 회사의 주식을 5달러의 수익을 달성하고 매도했고 이후 이 주식이 200달러까지 상승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14세인 1947년에는 신문배달을 시작하면서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고 신문도 한 종류가 아닌 여러 종류를 돌려서 수익을 극대화했다고 하며 현재가치로 15,000불의 시드머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버핏에게 학교성적도 강조했고 학교성적이 안 나오면 신문배달을 그만두라고 했다고 합니다.

15세에는 신문배달을 해서 모은 시드머니를 이용해서 네브래스카의 한 농장을 1200불에 구매했고 1950년 2000불에 매도하여 800불의 시세차익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현재 가치로 7만 불 정도를 모았는데 골프장 밖으로 떨어진 골프공을 주워서 팔거나 다른 사람 명의로 회사를 만들어서 핀볼기계 대여 및 수리 일을 시작했고 사람들이 너무 어린것 아니냐고 하면 사장님이 따로 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주변사람들의 신뢰를 받아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청소년기는 성공적인 삶을 살지만은 않았습니다. 경주마 배팅으로 175달러의 손실을 보기도 했고 시어스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하는 등 청소년기에 아웃사이더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워런버핏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나다

워런버핏은 온갖 아르바이트나 투자를 하면서도 학생 신분에 맞게 공부도 잘했으며 팬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 입학해서 직물, 금속, 석유사업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가 2년만 다니고 자신의 고양인 네브래스카 대학교에 편입을 해서 회계공부를 시작했고 '회계는 기업의 언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버핏의 인생을 바꾼 책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콜롬비아 대학교의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가 쓴 '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으로 주식이 단순히 투자를 얻고 수익이나 손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일부분을 소유하는 개념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주식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학생 시절 버핏은 또래 학생들과 달리 친구 사귀는 것이나 즐기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항상 외톨이었다고 하며 돈과 정치얘기만 좋아해서 그의 친누나도 버핏이 부끄러운 동생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버핏은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원에 지원을 했으나 떨어졌고 이후 컬럼비아 대학원에 그레이엄 교수가 있는 것을 알고 지원서를 냈는데 지원서 기한을 넘겼고 인터뷰도 하지 않았는데 합격했다고 합니다. 

그레이엄 교수는 학생들에게 A+학점을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유일하게 버핏에게는 A+를 줬고 수업시간에 둘만 대화를 할 정도로 버핏이 수업에 열정적이었다고 합니다.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는 그레이엄-뉴먼투자회사라는 회사를 운영했고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돈을 받아서 투자하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거의 최초로 투자사 같은 형태의 회사를 설립한 분이었으며 매우 쿨해서 본인이 투자하는 주식을 수업시간에 공개해서 학생들이 수업 끝나고 주식을 매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기간에도 버핏은 투자를 계속했고 졸업할 때쯤에는 현재 가치로 135,000불 정도를 모았다고 합니다.

 

근로소득자에서 투자전문가로 변신

워런버핏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최고의 투자는 그의 부인인 수잔과의 결혼이었다고 했는데요 1952년 수잔과 결혼한 버핏은 결혼반지로 재산의 6%를 투자했다고 할 정도로 그녀와의 결혼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투자였고 그녀가 2004년 사망하기 전까지 52년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레이엄 교수는 그가 그레이엄-뉴먼회사에 버핏이 입사하도록 당시 유태인들이 취업이 잘 안 돼서 유태인만 뽑도록 자체적으로 만든 규정을 바꿔서 버핏을 입사시킬 정도로 신뢰가 높았다고 하며 1956년 그레이엄이 은퇴하면서 회사를 버핏이 경영할 것을 부탁했으나 버핏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과 본인의 회사를 만들면서 근로소득자에서 본격적인 투자전문가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1956년 퇴사 당시 현재가치로 170만 불 정도의 돈을 모았다고 하며 버핏이 처음으로 설립한 회사는 Associates LTD로 첫 고객이 7명이었는데 모두 가족들이었고 현재가치로 10억 정도의 돈을 모아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회사설립 초기 투자전략은 집중투자와 담배꽁초 투자였으며 아무리 가치가 없어 보여도 내가 수익을 내면 그것이 좋은 주식이라고 했으며 현재가치로 8천만 불 이하의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했다고 합니다. 

투자하는 데 있어서 원칙은 PERPBR이 낮은 회사를 찾아서 보유기간을 5년 내외로 했으며 철저하게 분산투자 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늘렸다고 합니다. 

1959년 워런 버핏은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는데요 그가 바로 현재 버크 해서웨이의 부회장 찰리멍거입니다. 찰리멍거는 LA 변호사였으며 독서광으로 성장성과 가치가 있는 회사를 저렴하게 구매해서 오랫동안 보유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추구했고 버핏의 투자스타일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1961년 31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버핏의 자산은 현재 가치로 100억대 자산가가 되었고 1965년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제조회사를 인수하고 점차 다각화된 대기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수년 동안 버핏의 투자 기량과 가치 투자에 대한 절제된 접근 방식은 그에게 놀라운 성공을 가져왔으며 끊임없이 시장변화를 연구하고 대응하면서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고 현존하는 최고의 투자가로 남을 수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워런버핏의 투자성공 비결

워런버핏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을 꼽으라면 벤자민 그레이엄 교수와 찰리멍거입니다. 특히 그레이엄 교수는 그의 석사과정 교수였고 그의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투자조합을 만들었을 때도 그로부터 배운 투자방식을 적용하여 큰 수익을 내면서 지금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3가지 투자원칙으로 첫 번째 주식을 기업의 소유권으로 정의했습니다. 주식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한 기업에 대한 소유지분이 있는 것이고 주주는 비즈니스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재 가치에 비해 상당한 할인가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잠재적 손실에 대한 완충장치를 제공하고 하방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안전마진입니다. 

세 번째는 주식시장을 미스터 마켓으로 의인화했습니다. 시장이 폭락할 때 겁을 먹지 말고 미스터 마켓(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매수하고 시장이 이상 급등할 때는 미스터 마켓에서 매도하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상과 같이 벤저민 그레이엄의 3가지 투자원칙을 워런 버핏은 철저하게 준수했으며 이러한 투자결과 1956년부터 1969년까지 13년간 연평균 29.5%의 수익률을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 다우지수 수익률이 연평균 7.4%인 것을 고려하며 상당한 수준의 수익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워런버핏은 1969년 투자조합을 청산하고 1965년 인수한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회사를 투자지주회사로 변경해서 직접회사의 자산을 운용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워런버핏의 투자와 버크셔 해서웨이의 투자를 동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워런버핏이 승승장구하던 투자회사를 청산하고 버크셔 해서웨이를 투자지주회사로 만든 것은 그레이엄의 투자방식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 방식은 극심하게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해서 적정가격에 도달했을 때 매도하는 방법을 취했는데 투자자금 규모가 커지고 초창기 때처럼 투자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장기투자할 우량기업은 저평가되는 사례가 드물어졌고 버핏이 매수하는 작은 기업들은 부족한 유동성 때문에 조금만 매수해도 급등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으며 1960년부터 주식시장 호황으로 더 이상 안전마진을 갖춘 주식을 발견하는 것도 어려워졌기 때문에 새로운 투자방법을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새로운 투자방법을 고민하던 버핏은 성장주투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필립피셔의 투자법을 배우게 됩니다. 필립피셔의 투자법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성장할 수 있는 우량한 소수의 기업을 집중 매수하는 방법이니다. 

당시 워런버핏은 '그저 그런 기업을 헐값에 사는 것보다 훌륭한 기업을 적정한 가격에 사는 것이 좋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아무리 주가가 저렴해도 기업가치나 성장성을 갖춘 해자(moat)를 갖춘 기업을 선호한다는 의미입니다. 

* 해자(moat) : 성곽을 둘러싸고 있는 깊은 연못이라는 뜻으로 성을 공격하는 적들과 성곽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때문에 성을 함락시키기 어려워서 해자 그 자체적으로도 성을 방어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기업의 브랜드 파워나 독점력, 진입장벽이 높은 자기 자본이익률, 꾸준한 현금창출능력이 기업 입장에서 해자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워런버핏은 그레이엄 교수의 투자원칙과 필립피셔의 투자법을 접목시켜 가치투자와 성장투자를 병행하는 완성형 투자가가 되었고 이해하기 쉬운 사업구조, 독점적 지위와 브랜드 파워, 초우량기업에 집중투자 한다는 원칙으로 투자를 했습니다.

이러한 원칙에 의해 투자한 기업이 코카콜라, 질레트, 맥도널드, 아메리칸 익스프래스, 나이키, 월트디즈니 등이며 버핏은 기업의 비즈니스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독점적 지위와 브랜드 파워를 지니며 꾸준한 현금흐름이 창출되는 기업을 선호했습니다. 

 

맺 음 말

대공황 시기에 태어나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워런 버핏의 총 재산규모는 152조 원 대로 세계 5위 수준이라고 하며 놀라운 것은 그가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150조가 넘는다고 하니 그가 기부를 안 했다면 300조가 넘는 재산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2006년 버핏은 그의 재산 99% 이상을 고인이 된 아내 이름을 딴 수잔 톰슨 버핏 재단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버핏의 평생의 사업동반자 찰리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은 '버핏은 지속적으로 배우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는데요 버핏의 투자방법은 계속해서 진화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1965년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하고 운용한 지 58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버크셔 해서웨이 주당 순자산 연평균 증가율이 20%에 육박하고 주가 상승률은 연평균 21%였는데 같은 기간 배당을 포함해서 S&P500 지수 연평균 수익률은 약 10%대였으니 비교가 안 되는 수익률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 가까이 꾸준한 투자를 통해 매년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단기매매와 테마주 매매가 기승을 부리는 주식시장에서 투기와 투자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결과이며 워런버핏을 현존하는 최고의 투자가로 불리는 것은 숫자와 실적으로 증명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인 99세의 찰리멍거와 회장인 93세의 워런버핏의 도전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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